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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만의 리그에서 대중문해교육으로

  • 충청북도평생교육진흥원 전문연구원
  • 박시현
“지역의 방언을 모은 콘텐츠 발굴 및 기록 사업은 문해 영역보다는 문화의 영역에서 고민해보아야 할 분야임.”

충청북도평생교육진흥원은 2021년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 지역맞춤형 사업에 선정되었다. ‘충북 할매·할배 말을 모으다, 할모이’라는 브랜드 구축 사업으로, ‘할모이 어학회’를 운영하여 문해학습자들의 계속학습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에 평소 문해학습자들이 쓰는 일상 언어인 충북 사투리를 활용하여 사투리 사전을 발간하는 것이 사업의 큰 틀이다. 그런데, 심사의견 중 위와 같은 의견이 담당자의 눈에 띄었다. 본 꼭지는 문해와 문화는 과연 다른 영역인가, 라는 의구심에서 시작된 글로 본 화두를 통해 충북 문해교육의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칠곡 가시나들’은 ‘약목면 복성2리’에서 한글을 배우는 문해학습자 7명의 모습을 2016년 6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칠곡군과 아무런 인연이 없다는 감독은 “우연히 듣게 된 팟캐스트에서 칠곡에 거주하는 어느 할머니가 시를 읽는 것을 듣고 가슴에 와 닿아 칠곡군에 무작정 내려갔다.”고 말한다. 관객들 평은 다양하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라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순천소녀시대’로 유명한 순천 할머니들의 글과 그림을 담은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는 서울 전시회를 시작으로 미국 3개 도시 순회 전시도 다녀오는 등 국내외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그려보니 솔찬히 좋구만’ 서울전시회에서는 할머니들 그림을 담은 도록이 매진되는 등 비문해자였던 할머니들은 그야말로 화제의 그림작가로 변모하였다.

지난 2020년에는 창작 트롯 뮤지컬 ‘순천소녀시대’로 관객을 찾기도 했다.

‘시인 할매’는 전남 곡성 할머니들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 드라마로 ‘시집살이’를 하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詩집살이’를 하는 할머니들 삶을 보여준다. ‘사박사박 나의 마음에 자리 잡은 영화’라는 한 소감은 영화 포스터에 실린 할머니 시의 한 구절인 ‘잘 살았다 사박사박’을 인용한 것이다. 씨네21 김소미 기자의 표현처럼 ‘투박해도 예쁜 우리 할머니들의 미소처럼’ 서툴러서 순수한 할머니들의 시는 시민들에게 여운을 주었다.

위 세 가지 작품은 책과 공연, 영화라는 매개체를 필두로 문해교육 개념조차 모르는 일반인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두 편의 영화는 각각 평점 9.49, 9.64 라는 높은 별점을 기록하고 있고, 책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은 ‘문해교육’이라는 영역을 알지 못한다.

일반 성인들의 문화적 문해교육에 대한 인식을 탐구한 이애린(2017)의 연구에서는 일반인의 문해교육 인식에 대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연구가 끝난 후 연구참여자들은 문해교육에 대하여 ‘이런 교육이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홍보와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홍보와 지원을 통해 발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문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설문을 통해서 문해의 목표를 보고 이런 교육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국가적인 홍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평생교육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는지 몰랐는데,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을 쉽게 접해서 알아볼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네요.’라고 후술하고 있다. 성인문해교육의 교육, 활동, 홍보 등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비문해자를 여전히 대상으로 삼기에 일반 성인들이 문해교육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를 읽은 한 독자는 “순천시의 한 프로젝트인가보다.”라고 블로그에 소개하고 있고 있는데, 문해학습자를 소재로 한 작품을 접하더라도 그들의 활동이 문해교육인지 알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애린(2017)은 기문해자들 또한 문해교육의 대상이며, 이들을 대상으로 성인문해교육의 목표나 성격, 프로그램 내용을 알리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제언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문화적 문해’를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다. 시골 할머니들이 한글 배우는, 어찌 보면 소소하다 못해 지루할법한 이야기에 왜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는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6.4% 비문해자들이 영위해나가는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으로서 말이다.

영화, 출판, 광고, 음악, 신문, 방송 같은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대중문화는 의미 그대로 대중이 중심이 되는 문화이다. 소비 주체가 대중이다 보니 접근하거나 소비하는데 큰 부담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대표적 현상이 인문학 열풍이다. 정경량 교수는 인문학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공부해야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돈과 명예가 있음에도 행복하지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지 못하는 시대 인문학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어떠한 삶인지 제시해주는 학문인 것이다(시사 안성, 2019.3.27.). 문턱이 높았던 문학, 역사, 철학은 ‘어린이 인문학’, ‘부모 인문학’, ‘돈의 인문학’, ‘연애 인문학’ 등 다른 분야와의 융합과 통섭을 통하여 대중인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평생학습 인기 강좌로 자리매김하였다. 인문학 바람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인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혔다는 것은 유의미한 현상이다.

할머니들의 한글 공부를 다룬 영화와 책이 대중에게 감명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접한 대중문화와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의 개성보다 집단의 유행을, 다양성보다 획일화된 기준을, 내면보다 외형을 부각하는 대중문화 홍수에 지친 대중은 휘적휘적 시골 읍내를 누비는 할머니들 걸음걸이에, 모든 것이 바른 디지털 시대 삐뚤빼뚤 힘주어 눌러쓰는 할머니들 연필 글씨에, 이것도 글씨, 저것도 글씨, 세상이 다 글씨라고 말하는 80대 노인이 느끼는 삶의 해방에 대중은 “너도 괜찮아.”를 듣고 있는 것이다. 문해교육은 우리를 치유하고 위로해주는 삶의 지침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인문학이다.

문해교육은 글과 그림, 영상이라는 문화예술과 만나 기초문해교육 담장을 넘어 선한 영향력을 뻗어나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초문해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가 정의한 ‘문해’라는 개념 안에 이미 ‘문화적 문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해는 문화전승의 결과(이지혜, 2003)이자, 사회적·역사적·문화적 개념(허준, 2016)이라고 제시한다. 설연경(2013)은 문화예술활동의 특징으로 창의적 자기표현, 자신에 대한 성찰 및 회복, 타인과의 소통, 공유, 공감, 그리고 삶의 질과 풍요로움 함양이라고 제시하며, 이는 문해교육을 통해 함양될 수 있는 역량이라고 보고 있다. ‘우리’가 되지 못하던 사람들 문해학습자는 문해교육을 통하여 비로소 ‘우리’라는 세상의 영역에 들어왔고, ‘우리’ 역시 문해학습자의 글과 그림, 이야기를 통해 ‘우리’와 만났다.

곽삼근 등(2016)은 ‘인문학적 표현으로서의 문해교육’을 강조한다. 다가올 인문학은 ‘표현하는 인문학’이 되어야하며 학습자의 표현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문해력이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문해교육은 이제 특정한 기량 습득이라는 표준화된 기준에 한정할 수 없으며 비문해자와 기학습자를 구분하지 않는 사회적 실천으로 나아가야함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러한 문해의 가치와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시화전과 문해한마당이 개최된다. 그러나 여전히 평생학습 관계자만 알고 즐기는 ‘우리들만의 리그’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이러한 한계를 타파하는 것이 평생학습의 숙원이자 과제이다.

‘칠곡 가시나들’과 ‘순천소녀시대’, ‘시인 할매’의 사회 반향은 문해교육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평생교육 관점에서 성인문해교육은 ‘기초문해교육’ 영역에 갇힌 우리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타 영역과의 융합과 확장을 통하여 일반 학습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너머 문해교육’ 실현의 한 방법인 것이다. 주동범(2010)은 ‘문화적 문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문화적 문해란 “인간이 행하는 문화적 행위 자체 및 행위 과정, 행위 산물 등 문화적 과정 총체에 대해 이해하고 또한 그러한 행위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사회의 의사소통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든다. 많은 사람이 문해학습자의 문해 활동을 담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범주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고 이해하는 것이다. 문해학습자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지면서 품어주고 지지하는 사회 문화는 나와 너의 거리, 문해와 비문해의 거리, 그들과 우리의 거리를 좁혀주는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구현해줄 것이다. 문해교육은 메시지다. 글자를 읽고, 개인의 삶을 읽고, 그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읽으며, 인간은 읽는 것이 문해의 정신이자 얼이라는 메시지 말이다.



참고문헌 곽삼근, 박세영(2016). 한국 성인문해교육의 전개과정과 리터러시 확장의 과제. 평생교육학연구, 22, 85-108.
설연경(2013). 문화예술활동 기반 교육의 의미와 구성주의적 학습 환경과의 관련성 탐구. 문화예술교육연구, 8, 179-200.
이지혜(2003). 학습사회에서 성인문해의 의미. 평생교육학연구, 9, 57-74.
허준, 이경민, 이진희(2016). 성인 문해교육 연구의 담론 지형. 평생교육학연구, 22,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