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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장곡면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취재

학교는 건물이 아니다

  • 충청북도평생교육진흥원
  • 박시현 전문연구원
7월 10일 토요일, 홍성군 장곡면에서 열린 “마을이 학교다” 워크숍에 참가했다. 여름호 전문가 칼럼을 기고한 일소공도 구자일 소장의 초청 덕이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져야 할 지역사회학교 사례’라는 주제는 주말임에도 기꺼이 충남 홍성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강의가 진행되는 강의실이 있는 건물 앞에 자전거가 소박하게 놓여있다
“ 강의가 진행되는 장곡면 오누이센터에 조금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자기한 센터 모습에 주변을 서성이며 둘러본다. 광장을 중심으로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광장 한 켠 건물 전면 유리창을 통해 강의를 듣고 있는 참여자들 모습이 보이고, 맞은편 오픈형 건물 중앙에 꾸려진 미니 화단이 눈길을 끌었다.
오픈형 건물 중앙의 앙증 맞은 미니화단. 이날, 괴산군과 국토연구원에서도 탐방을 와서 방문객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에 쏙 든 건 강의건물 뒤편에 위치한 ‘행복부엌’이라는 공간이다. 어릴 시절 우리는, 집을 그릴 때 꼭 세모 지붕 집을 그렸다. 정작 현실에서는 세모 모양 지붕을 가진 집을 찾기가 어려웠지만 말이다. 지난 날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세모 지붕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군더더기 없는 모습부터 이미 마음은 뭉글거리는데, 나무로 만든 간판이 서정적 풍경을 더한다.
진짜’ 집△모양의 공동식당 행복부엌. 청년농부들의 식사를 위해 이장님이 손수 나섰다.
밥도, 수저도, 레터링도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간판이 이 건물의 포인트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감탄하면서 살펴보고 있는데 도착했다고 해놓고선 통 나타나질 않는 방문객 찾으러 구자인 소장이 출동했다. 첫 인사를 나눈 구자인 소장을 따라 강의장으로 들어서니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과 함께 라운드테이블 형태로 앉은 참석자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맞았다. 계단식 의자 한 구석에 자리 하니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많은 방문객 수에 내심 놀랐는데 이날 워크샵에는 괴산군 마을교육공동체지원센터와 국토연구원 지방소멸 연구팀이 함께 했다.
계단식 의자와 전면 책장이 창의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늘 프로그램은 젊은협업농장 정민철 대표의 ‘지역과 학습운동’ 강의를 시작으로, ‘농업과 지역, 청년, 학습’을 주제로 젊은협업농장과 행복농장을 견학한다. 이후 ‘마을학회 일소공도와 마을연구소, 주민자치회 운동’에 대한 마을연구소 신소희 책임연구원의 강의가 이어지고 이후 홍동면으로 이동하여 밝맑도서관과 생각실천창작소 등 견학을 끝으로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정민철 대표는 “지역에서 활동하려면 지역을 알아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대학에서는 농업 기술을 알려줄 수 있지만 농촌 생활을 알려줄 수는 없다. 도시 청소년들이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농촌에 와서는 감자 캐고 고기 구워 먹고 감자 담은 봉다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들이 다음에 다시 올리는 만무하다. 다음에 와도 또 감자캐기를 할 테니까 말이다.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이들을 농장으로 보내면 농장에서 평소 하기 싫었던 일을 방문객이 떠맡게 돼요. 난생 처음 농사를 짓는 청소년들은 ‘아, 농사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라는 생각을 안고 돌아가겠죠. 봉사로 볼 게 아니라 교육을 해야죠. 그 시기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시키는 거예요. 젊은협업농장에서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농사일에 그대로 투입시켜요. 방문객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나 행사는 없어요. 얼마 전에는 서울시 청년들이 농장에서 2주간 경험을 했는데 정해진 일정이 없으니까 마을 리듬과 똑같이 움직이다 갔어요.”
다시 세상에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5년, 6년 운영하다보니 장곡면으로 찾아오는 젊은 청년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농촌생활에 필요한 강의 또한 하게 되었는데, 강사는 동네 사람들이다. 외지에서 온 체험 방문객이 있으면 이런 강좌에 그대로 투입하면 된다. 적을 때는 2명, 어떨 때는 가르치는 사람들만 있을 때도 있다. 그래도 계속한다. 한 번 쉬면 지속하기 함들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곧 교육자이다. 이들에게 강사비를 지급하다보니 농장의 교육적 능력이 증대하게 되었다.

“마을학교라고 하면 사람들이 물어요. ‘학교가 어디 있어요?’ 팻말을 세워두면 팻말을 보고 ‘이게 학교예요?’라고 해요. 학교가 건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마을학교는 지역사회가 작동되는 매커니즘을 가르쳐야 하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지역사회와 단절이 돼요.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민철 대표는 말한다. 지역사회 전체가 캠퍼스라고. 장곡면 사람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캠퍼스가 워낙 커서 캠퍼스 안에 버스가 다닌다고. “우리는 서로 그래요. 여기는 농업 쪽 강의가 많으니까 우리는 농대 할게. 너네는 인문대 해라. 중간쯤에 예대 하나 만들까? 라고요. 마을학교 교육은 지역사회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죠. 학생들이 동네사람과 섞여 돌아가면서 농촌사회는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이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있는 지역은 건물 몇 개 있고 동네 할아버지들이 슬리퍼를 끌고 왔다 갔다 하고, 아이들이 수업 받는다고 왔다 갔다 한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와 분리된 교육을 했기 때문에 청년들이 사회에 진입하는 게 어려워졌다.
장곡면의 청년 농부들이 짓고 있는 은협업농장의 한 비닐하우스 광경. 협업농장은 약 10년 전 마을 어르신이 논 한마지기를 제공하며 시작되었다.
귀농귀촌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젊은협업농장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인구 저밀도로 인해서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이곳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네가 가진 재능을 어떻게 펼칠 거냐고. 스스로 고민하게 하고 개념을 만들어가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청년은 창업을 하더라도 이런 가게는 지속 가능하다. 이러한 고뇌와 성찰은 농장 일이 끝나고 이루어지는 저녁 수업에서 더 촉진된다. 청년들은 새벽 6시부터 오후4시까지 농장일을 하고 저녁에는 수업을 듣는다. 지역사회 리듬에 맞추어 긴밀하게 돌아가지만 농장일보다 수업참여가 우선시 된다. 한창 일하다가 수업하러 간다고 떠나니까 어르신들이 별로 안 좋아하지만 시간이 되면 농장일을 멈춘다. 수업에서는 마을의 이해나 농업 이론에 대해서 배우거나 글을 쓰고 읽는다.

“젊은협업농장은 중간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어요. 왜 꼭 3월 1일에 입학해야 하나요? 자기가 원할 때 입학하고 이제 됐다, 생각하면 나가는 거고. 이게 농촌사회 특징이잖아요.”
이날 가이드를 해준 평민마을학교 장유리 간사는 장곡면으로 온지 7년 정도 됐다. 이제는 수입이 많이 늘어 월130만 원 정도 번다. 써도 남아서 후배 농부들 밥을 사준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농촌에 사는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정민철 대표 생각은 다르다. 지역사회에 살면서 그 지역사회를 얼마나 많이 알 수 있겠느냐 반문한다. “이 동네에서 한 20년 산 애가 서울 갔다오니까 이제야 우리 지역이 눈에 보이더래요. 우리 동네에 이런 게 있다는 것을 벗어나니 알았다고. 여기 산다고 지역사뢰르 아는 게 아니거든요.” 장곡면의 마을 프로그램은 장곡면에 사는 초등학생이 농장에 가서 일을 해보자는 게 첫 시작이었다. 농업교육의 사각지대는 농촌에 있는 학교들이다. 도시 학교는 관광버스 대절하여 농촌으로 오는데 농촌에 있는 학교는 오히려 체험을 하지 않는다. 학교 주변에 농장이 잔뜩 있음에도 시골 학교 안에 텃밭을 만든다. 담만 넘어가면 동네 어른들이 다 농사짓고 있는데 말이다. 지역사회와 학교의 단절이다.

초등학생 6년 동안 32개 리를 다 한 번씩 가봤으면 좋겠는데 장곡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이들은 거의 몰라요. 학교버스 타고 바로 학교로 들어오고 하루종일 학교에 있다가 또 학교버스 타고 바로 집으로 가니까요. 학교, 학원, 집 밖에 모르는 거예요. 농촌도 도시랑 똑같아요. 교육은 학교에서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는 거죠. 지역사회는 교육 역량을 키워야하고 학교는 자기가 가진 능력을 마을로 이전시켜야 해요.”

지역사회와 학교가 어떻게 관계 맺느냐에 대한 지점이며, 중간 통로가 되어주는 것이 젊은협업농장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청소년들은 학교 다니는 시기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이해하게 되고, 훗날 그들이 다시 농촌에 살겠다고 했을 때 지역사회로의 진입이 수월할 것이다. 농장을 통해 학습, 교육, 지역사회와의 연결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유다. 주민들이 마을교사, 마을스텝으로 활동하는 것이 곧 지역사회의 활성화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것을 협소하기 보지 말고 지역사회 전체의 학습 능력을 키운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됩니다.”

이 날 워크숍은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구자인 소장님 덕에 참가할 수 있었다. 오후에는 일소공도로 자리를 옮겨 일소공도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일소공도는 ‘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라는 재미난 의미를 담고 있다.
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는 일소공도 광경
일소공도는 연구와 현장, 지역이 구분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실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학교와 마을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대한 물음은 꾸준히 존재했지만 현재 대부분 지자체가 프로그램 개발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주민활동가는 활동만 활발히 하고 연구자는 이에 대한 연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다보니 마을활동가가 연구의 대상에만 머무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계기로, 농민과 활동가 또한 전문가로서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학회를 만들자고 생각했고, 학회지만 내는 아카데미가 아니라 농촌마을의 학회로서 역할을 정립하고자 했다.
충남연구원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 센터장에서 일소공도 소장으로 새로운 출발을 한 구자인 소장
2017년 설립된 일소공도는 1년에 두 번 학회지를 발간하고 세미나를 개최한다. 해외에서 탐방 오는 방문객을 위해서 창구 역할도 수행한다. 장곡면 주민들이 모여서 다른 지역 학습도 하고 서로 활동을 공유하며 토론하는 자리를 가진다. 2019년 열린 공동학습회는 100여명의 주민이 참석할 정도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놀랍게도 일소공도 소속 연구원들은 프리랜서 연구자로, 연구용역을 통해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생계를 꾸려나간다. 온전하게 월급을 받는 것은 농촌과 맞지 않는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물론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존재하며 이러한 근로형태는 일소공도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용역 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분과는 협동조합으로 독립하였고 회원은 200여명으로 이 중 150명 정도가 후원 회비를 내는 유료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