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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꽃을 좋아한다면, 놀이정원사

  • 박 시 현
  • 충청북도평생교육진흥원
2017년 ‘광명시 창직 포럼’에 ‘정원 놀이 지도사’(이하, 놀이 정원사) 사례 발표자로 나온 푸르네정원문화센터 센터장 김현정 씨는 자신을 ‘개념 있는 정원사’라고 소개했습니다. ‘행복한 정원사’ ‘어쩌다 정원사’ ‘달팽이 정원사’ ‘춤추는 정원사’ ‘바람난 정원사’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동료들과 함께 푸르네정원문화센터 일을 한다고 합니다. 꽃과 나무 등 식물에 조예가 깊고 미적 감각까지 타고나야 할 것 같은 동화 같은 직업 정원사라니, 모든 화분을 죽이는 재능을 타고난 저 같은 사람에겐 거리가 먼 일입니다. 저는 지금껏 수목원이나 공원에 가서 예쁜 정원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그 뒤에 이처럼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포럼 사회를 보던 저는 김현정 씨의 창직 사례 발표를 듣고 “저도 ‘우연히 정원사’란 이름으로라도 활동하고 싶네요”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원사나 원예사는 식물이나 조경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놀이 정원사는 다릅니다. 정원을 베이스로 해서 아이들의 놀이와 교육을 접목한 통합 놀이 교육을 하는 사람이지요. 아이들이 정원에서 거닐고 관찰하고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생명과 환경에 친해지도록 도와줍니다. 말 그대로 정원에서 ‘잘’ 놀도록 지도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놀이 정원사로 막 활동하기 시작한 초보 강사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꽃 이름을 아이들이 물어보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한답니다. 이런 상황은 엄마들도 종종 마주치는데요, 이럴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나요? 우리 모두 훌륭한 엄마를 꿈꾸니 “엄마도 몰라” 하는 대답 대신 “우리 함께 찾아볼까?” 하는 모범 답안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네요.

놀이 정원사 김현정 씨는 어떻게 할까요? “어, 선생님도 꽃 이름을 잘 모르겠네. 우리가 꽃 이름을 지어줄까?”라고 한답니다. 저는 이 대답을 듣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참 좋은 교육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것은 꽃 이름이 무엇인지 ‘정답’을 찾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아이들에게 선물할 테니까요. 꽃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꽃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그 꽃의 색깔과 생김새, 특징 등을 살피게 될 겁니다. 김현정 씨는 말합니다. “나중에 학교에 가서 교과서에서 그 꽃 사진을 보면 다른 어떤 꽃보다 더 기억에 남겠지요.” 이처럼 아이들이 정원 안에서 뛰놀며 그 안의 생명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나도록 이끌어주는 직업이 바로 놀이 정원사입니다.

김현정 씨는 원래 정원사입니다. 그녀는 지금도 정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등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원과 관계된 갖가지 콘텐츠를 개발하는 정원 콘텐츠 개발자이자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위한 ‘꼬마 정원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성인들을 위한 정원 여행을 기획합니다. 소외 계층이 사는 곳에 정원을 만들어 기부하는 활동도 하고요. 놀이 정원사는 그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창직 사례인 셈입니다. 김현정 씨의 이야기입니다.

“원예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식물에 대해 가르치다 보니 식물들로 이루어진 정원이라는 공간에 자연스레 관심이 가더라고요. 식물들로 가득한 정원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행복을 준다는 알게 되었습니다.” 정원이 행복을 준다니 무슨 말일까요?
2017년 ‘광명시 창직 포럼’에서 김현정 씨가 사례 발표를 하면서 아름다운 정원 사진을 보여주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 김현정 씨가 저희를 보고 이렇게 물었지요. “보세요, 여러분도 지금 다들 웃고 계시잖아요. 이것이 바로 정원이 주는 힘이랍니다.” 그제야 사회자인 저뿐만 아니라 청중들 역시 미소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식물이 사람을 웃게 만들다니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원래 저는 대학에서 식물에 대해 가르치다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경 회사로 이직을 했어요. 그런데 정작 정원사로 일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조차 정원에 와서 식물들과 온전히 만나본 경험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정원을 경험하고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놀이 정원사’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된 데에는 원예학을 공부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더 큰 역할을 했어요. 아이가 유치원에서 미술 시간에 만들었다며 가져온 종이 작품을 보면서 ‘왜 이런 걸 만들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엄마에게 유치원에서 이런 것도 만들었다고 보여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더라고요.”

놀이 정원사는 보통의 관찰 프로그램들처럼 활동지에 쓰고 기록하는 등 ‘과제’를 하는 것보다 경험 자체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물이 없다는 것은, 아이를 보낸 부모 눈에는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놀다가 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놀이 정원사의 교육 철학을 전달하려면 부모 교육도 함께 필요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정원에서 활동을 하는 동안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의 정원 활동의 의미와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겁니다.

“아이들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단지 지식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놀이 정원사가 진행하는 ‘꼬마 정원사 프로그램’은 가르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면 아이들을 교육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김현정 씨의 말입니다. 그럼에도 놀이 정원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경험한 아이들이 일상에서 보여주는 변화는 놀랍습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꽃을 꺾던 아이들이 이제는 꽃을 꺾기 전 “너 집에 데리고 가도 돼?” 하고 묻고, 비바람이 치는 밤 자기가 심은 꽃이 무사한지 봐야 한다며 굳이 바깥으로 나갑니다. 꽃대가 쓰러졌으면 지지대를 해주어야 한다면서요. 학교 가는 길엔 페트병에 물을 담아서 집을 나서고요.

이처럼 생명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와 더불어 아이들이 눈에 띄게 달라진 또 한 가지는 표현력입니다. 일기 쓰기를 귀찮아하던 초등학교 4학년 한 남자아이는 정원 놀이를 다녀온 날이면 꼭 세 페이지씩 일기를 씁니다. 놀이 정원사 선생님이 해주신 꽃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두 기록하는 거지요.

한번은 연못 속 물고기들을 바라보던 다섯 살짜리 꼬마 정원사가 그만 연못에 빠졌던 일이 있습니다. 놀라서 얼른 아이를 건져냈는데 그때 물 밖으로 건져낸 아이가 외쳤습니다. “엄마! 물고기들이 ‘도연아, 여기로 들어와. 여기는 정말 시원해’ 하고 말해서 내가 물속으로 들어갔어!” 어른들이 보기엔 실수로 아이가 물속에 빠진 것이었는데, 아이는 물고기와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분꽃 씨앗으로 천연 화장품을 만들 때면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장미꽃을 빻아 붉은 색깔을 만들어냅니다. 정원 놀이에서 관찰을 많이 해본 경험이 이렇게 아이들의 창의력과 관찰력을 쑥쑥 길러주는 것 같습니다.

놀이 정원사로 활동하는 강사가 이젠 제법 늘었습니다. 김현정 씨는 처음 놀이 정원사를 시작하면서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개설해 홍보를 시작하던 10년 전이 새삼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놀이 정원사가 있다는 걸 알리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더딘 시간들이 내실을 다지는 데는 큰 힘이 되어주었어요. 빠르게 가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천천히 나아간 게 단단한 기반을 만든 비결이라면 비결일까요?”

이제는 강사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놀이 정원사를 만들게 된 교육 철학이 왜곡될까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방에도 놀이 정원사가 생기고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모이면 생각이 많아지니까요. 처음 생각이 변하지 않기 위해 매번 초심을 다집니다.

“놀이 정원사는 아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우리의 미래이니까요.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감성을 일깨워주고 자연의 위대함을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의 목표와 철학이 뚜렷해야 하죠. 왜 우리는 이 일을 하려고 하는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는가, 그런 철학이 바로 세워지면, 그것을 해내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정리가 됩니다.”

김현정 씨와 인터뷰를 마칠 무렵 제가 슬쩍 물었습니다. “몇 살부터 놀이 정원에 참여가 가능한가요?” 대개 일곱 살은 되어야 프로그램에 잘 따라오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꽃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그리고 저의 아들도 그런 아이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내 직업 내가 만든다> 저서 일부를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