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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만남 <맛남살롱>

거리두기가 아니라 이웃하기를 꿈꿔요
충주 마을교육활동가

통장 일에, 농사일에, 마을 아이들까지 돌보느라 너무 바쁘지만 아이들이 갈 곳을 만들어준다는 사명감을 느낀다는 충주 금곡생태마을학교 권용희 마을교육활동가를 만났습니다. 오늘도 감자 캐다가 부랴부랴 왔다는 연수동의 ‘진짜 어른’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래요?

“여기가 마을 방앗간이었고, 여기는 태백공사 목재소였고......”
아이들과 함께 동네 골목길 누비며 마을 역사를 소개해주는 인상 좋은 할머니를 만난다면, 그 분이 권용희 마을교육활동가(이하, 활동가)입니다. 충주 연수동에서 35년을 사셨다는 권용희 활동가 눈에는 제 아무리 이곳이 도시로 탈바꿈을 했어도 예전 동네 모습이 보이겠지요.

약 15년 전, 동네 할머니들이 가가호호 도장을 받아온 덕분에 지금껏 연수1동 통장으로 마을 일을 맡고 있는 권용희 활동가는 2018년 출범한 ‘연수동마을계획단’에 참여하게 됩니다. ‘문화가 꽃피는 행복연수’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계층의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주민 자치 활동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사업이었습니다. “여러 분과 중에 저는 환경팀이었어요. 당시 원룸촌에 쓰레기 분리배출 시설인 클린하우스가 있었는데 너무 지저분했어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저희가 ‘한 평 정원’이라는 것을 기획해서 행복복지센터에 제안서를 올렸죠. 바로 되지는 않았지. 관리가 안 되니 철거하라는 주민, 그래도 세금으로 설치한 건데 아깝다는 주민.....내 집만 깨끗하면 되는 겨. 남의 집 골목은 더럽든 말든(웃음). 그런데 마을 일이라는 게 주민이랑 공유가 되어야 순조롭게 진행이 돼요.”

그 동안 쌓은 15년 통장 내공을 발휘해야 할 때! 클린하우스 주변 사진을 찍고 행복복지센터에 몇 번을 쫓아간 끝에 담당 직원 협조를 받아 한 평 정원이 탄생하였습니다. “지금도 모종 남는 걸로 계절마다 심어요. 사후관리가 잘 되어야 하거든. 그 앞에 교회 목사님이 매일 관리를 해요. 얼마나 예쁜지 친구들 오면 그리로 데려가서 구경도 시켜주고 그래요.”
금곡생태마을학교의 뿌리는 마을계획단입니다. 옛 마을에 대해 공부하고, 마을신문을 만들고, 산책할 수 있는 길을 발굴하여 의미를 붙이는 동아리 ‘연원산책길’을 운영하고, 이런 마음이 모여 마을학교로 확장된 것입니다. 현재 마을계획단 사업은 종료되었지만 마을계획단을 지키고자하는 5명의 회원이 남아 마을학교 운영진으로 아이들과 마을살이 중입니다. 이웃과 함께 주도적으로, 스스로 꾸려나가는 진정한 주민 주도 사업이 된 겁니다.
“제일 좋은 점은 아이들이 갈 곳을 만들어준다는 것. 코로나 때문에 속상해요. 매일 마음 졸이죠. 오늘은 몇 명이나 오려나. 아무도 없어도 운영진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언제나 우리는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요. 아이들과 같이 간식을 만들어서 먹는데 아이들이 “내가 할게요.”,
“나도 해보고 싶어요.” 하면서 지들이 하려고 할 때 참 좋아요. 집에서는 안 먹는 애들이 모이면 그렇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고 해. 쟤가 먹으면 아까우니까 나도 먹고 그래요, 애들이.”

금곡생태마을학교에는 동네 이웃들을 만나는 ‘이웃하기’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재래시장 장날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상인들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상인들도 너무 좋아하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서로 인터뷰 하겠다고 아우성이고, 상인들은 파는 물건을 아이들에게 그냥 주면서 말이지요. 시장을 나서는 아이들의 무거운 양손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집니다. 아이들은 ‘이웃하기’를 통해 충주시 공무원, 시인, 분식집 사장님을 만나며 마을어른에게 한 걸음 다가갑니다.
마을신문인 ‘연원마을’에 계명산, 남산, 탄금대 등 마을 역사이야기를 시리즈로 기고해주시던 김근수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를 위한 선물을 아이들이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동안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고, 네이버 지도를 출력해서 할아버지가 자주 가시는 곳, 우리랑 같이 가면 좋을 곳들을 체크한 후 지도를 보면서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낮잠 중이셔서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할아버지 글 속에 있던 작은 연못과 할머니를 좋아하는 강아지, 그리고 예쁜 꽃들과 나무들을 구경하고는 돌아왔지요.
사진동아리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하여 마을길 입구에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사진 제목을 지어다가 사진에 달고, 사진 속 장소에 가서 다시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추후에는 원본 사진 아래 아이들의 ‘패러디’ 작품을 함께 전시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애들한테 감자가 자라는 걸 설명해주고 각자 감자를 그려보라고 해요. 그리고는 감자를 작은 화분에 심어서 집에 가져갈 수 있도록 하나씩 들려 보내거든. 애들이 좋아해요. 아주 더울 때 학교 벽화도 같이 그렸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그래도 지나갈 때마다 보고 애착이 생겨요. 내가 관여가 되어야 애착이 가지.” 아이들은 이번에 수확한 감자를 팔러 다시 한 번 시장으로 나간다고 합니다. 좌판 깔고 앉아있는 꼬마 상인들이 감자를 다 팔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관여를 하여야 애착이 생긴다.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 동네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적이 과연 있었나, 가만 되돌아봅니다. 내 아이가 성장한 후 돌아오고 싶은 고향이 되려면 다채로운 감정들이 곳곳에 아로새겨져야 하겠지요. 연수동에 기업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면서 밭이 파헤쳐지고 낮은 주택이 헐립니다. 그 자리에 원룸이 올라가고 도로가 놓입니다. 그 흐름과 변화를 막을 순 없지만 마지막까지 이 마을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단단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을 연수동 마을교육활동가들은 오늘도 하고 있을 겁니다. 온 세상이 거리두기를 할 때 충주의 어느 마을에서는 이웃하기가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