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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직업을 만든 사람들 <JOB Creator>

아름다운 길 연구가

  • 박시현
  • 충청북도평생교육진흥원 전문연구원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길들을 지나쳐 옵니다. 찻길, 흙길, 꽃길, 산길, 골목길, 굽은 길…… 우리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정취와 풍광을 지닌 멋진 길들을 찾아서 걸어보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길 연구가’(이하 ‘길 연구가’) 김성주 씨입니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본 길만 수만 곳입니다. 이런 길들 가운데 그가 느린 여행을 지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여행 코스로 개발한 곳도 꽤 많아서, 서울의 숨어 있는 길들을 포함해 꽃길, 숲길, 바닷가길, 산책길 등 100여 곳에 이를 정도입니다. 김성주 씨는 느리고 게으른 여행을 권합니다. 자가용보다 대중 교통, 대중 교통도 고속버스보다 시외버스, 시외버스보다 시골 버스, 시골 버스보다 걷는 것, 그리고 걷는 것보다 한 자리에 머물며 오래 보는 여행을 권합니다.

길 연구가는 단순히 길에 대한 지식을 소개하고 여행을 안내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길을 사람들과 함께 걷고 그 느낌을 나누면서 ‘사람의 길’, ‘변화의 길’ 같은 인문학적 주제를 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답사 코스를 따라 해설을 해주는 여행 전문가는 많습니다. 그러나 김성주 씨는 ‘길’을 테마로, 그 길에 인문학을 입히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은 나무나 숲 등 자연 생태에 관련한 책은 물론이고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의 책을 읽고 3,000편이 넘는 다양한 주제의 영화를 본 덕분이기도 합니다. 숨어 있는 아름다운 길을 찾아 전국을 다니며 답사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어마어마한 메모가 들어 있는 지도책 속에는 자신만의 콘텐츠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길 위를 떠돌면서 나의 진짜 꿈은 여행가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마흔을 코앞에 두고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여행과 길에 인문학을 입히는 나만의 방식이 과연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잘하는 선택일까?’ 불안했죠.” 하지만 그를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 덕분에 그는 길 연구가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인터넷 카페 ‘김성주여행연구소’를 개설하고 동호회를 꾸려서 ‘서울 여행 프로그램’을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여행’에 주목하는 사람이 없을 때여서 기대 이상의 호응이 있었지요. 그러면서 우연히 여행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여행 프로그램 개발에 온 마음을 쏟게 됐습니다. 참가자들의 그날 행복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의뢰받은 여행 탐방 프로그램을 한 건 한 건 완성해 나간 것이 또 다른 여행 탐방의 추천으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김성주 씨는 이른바 ‘여행 5적’을 피하고 ‘여행 5벗’을 찾아갑니다. 여행 5적이란 사람, 소음, 주차장·매표소·식당가, 인공 구조물, 시멘트입니다. 여행 5벗이란 여백, 바람, 풍경, 흙길, 자연입니다. 김성주 씨는 말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법시험 준비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가장 잘한 일은 그 욕망에서 벗어난 것이고요. 내 심장은 법전을 볼 때가 아니라 지도책을 볼 때 제일 세차게 뜁니다. 내 마음은 법원에 갈 때가 아니라 낯선 길을 찾아갈 때 가장 설렙니다. 생이 다할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꿈이 아닌 직업으로 가졌습니다. 앞으로 내 인생에 다른 직업은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