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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배우니 선생님과 친구가 생기고, 상(賞)도 타게 됐네요”

증평 김득신 문해학교 장금자 어르신

“코로나 때문에 좋았다... (중략) 속만 썩이던 영감님 평생 미워했는데... 아침에는 두부국, 저녁에는 싸움국 그리 지내다 보니 정이 들었다.” 증평군 장금자 어르신의 ‘아침에는 두부국, 저녁에는 싸움국’ 작품 속 글귀이다.
지난 7월 충북도평생교육진흥원 주관 ‘2020 전국 성인 문해시화전'이 열렸다. 시화전의 주제는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주변에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였다. 장금자 어르신의 시화는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어려워지자 남편과 집안에서 투닥거리며 함께한 덕분에 평생 느껴온 원망감은 사라지고 정이 깊어져 의지가 된다는 내용을 표현했다. 일상을 '두부국'과 '싸움국'으로 담아낸 표현의 독창성과 참신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해왔다.

어르신이 한글을 처음 접한 건 지난해 12월. 공공근로를 하던 중 옆 동료가 한글을 가르쳐주는 곳이 있다고 해준 얘기에 솔깃해서 찾아간 곳이 바로 ‘증평군 김득신 문해학당’이었다. 막상 문을 두드리긴 했지만,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때라 주눅이 들어서 포기하기를 몇 차례. 그때마다 어르신에게 용기를 준 건 선생님과 동료들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합 교육이 어려워지자 집으로 찾아와 친근감을 더해주고 추가 지도를 해주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공부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남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다는 장금자 어르신. 이흥연 동행학당 한글 강사는 “문해학교 등에서 수년 동안 한글을 가르쳤지만 장 할머니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처음 본다. 초등학생용 국어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써 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공짜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러한 노력이 바로 시화전 최우수상을 이끌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저희는 C**뉴스룸인데요. 어르신과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네??”
‘라디오도 아니고, 종합교양채널도 아니고, 뉴스에서 더구나 생방송으로????’
시골에서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운 늦깍이 학생에게 텔레비전 20분 생방송이라니.
보란 듯이 모두의 염려를 뒤로 하고 당당히 뉴스 생방송에서 인터뷰를 했다.
글을 알게 되며 세상과 소통하게 된 이야기. 진솔하게 풀어내시는 이야기는 때론 웃음으로, 때론 눈물로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뿐만 아니다. 방송국 관계자에 따르면 인터뷰 하러 오는 사람 중에 이렇게 많은 응원객을 몰고 온 사람은 없다고 한다. 가족, 교육관계자 그리고 한글 선생님과 동료들. 장금자 어르신이 방송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곁에서 챙겨주고 TV에 나올 때에는 설렘으로 가슴을 다독이며 단 1초도 눈을 떼지 않았다. 평생 가족과 이웃만 있던 이분들에게 처음 생긴 학창시절 친구란다. 비록 나이는 다르지만, 그 우정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TV에 인터뷰 요청을 받고 선생님과 친구들(일명 독수리 오자매)은 바빠졌다. 우선 옷부터 샀다. 공부 열정을 표현한 빨간색으로. 그리고 인터뷰 연습에 들어갔다. 질문지를 뽑아내 특훈에 돌입했다. 마치 모두가 방송에 나오기로 한 듯 내 일처럼 준비를 도왔다. 똑같은 답변 반복하지 않기, 자신감 있게 말하기, 여유있게 말하기, 다섯명이 모여서 답변을 준비하니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거기에 그동안 공부한 것만 챙기면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전에 뉴스를 보니 배경이 파란색? 앞서 구입한 빨간색 상의는 너무 튈 거 같다는 생각에 의견을 모아서 장날 다시 모였다. 그리고 분홍색으로 다시 구입했다. 이것저것 몸에 대보고, 입혀보고 안봐도 비디오인 독수리 오자매. 그리고 방송 당일 미용실을 들렸다 온다는 장금자 어르신이 혹시 검정색으로 염색을 하고 올까 염려돼 미용실까지 모두 찾아왔더라는 후문이다. 그렇게 독수리 오자매의 장금자 어르신 TV출연 프로젝트 덕분에 인터뷰는 성공리에 마무리 지으며 동네방네 이슈가 되었다.

이후 장금자 어르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어르신의 시화가 게시되고 라디오, 티비, 신문사, 잡지 등 언론사 인터뷰도 줄을 이었다. 때마다 독수리 오자매는 늘 함께 출동한다. 때론 동료로서 인터뷰도 같이 해주고, 때론 코디네이터처럼 옷매무새도 잡아주고, 때론 팬클럽이 되어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동안 아내로, 엄마로서만 살던 삶을 뒤로 하고 이제는 증평군, 아니 전국의 유명인이 되었다. 그 뒤에는 항상 함께 해주는 선생님과 동료들이 있었다. 함께 남편 흉도 보며 웃고 떠들다보니 마음 속에 힐링도 되고 덕분에 남편과도 사이가 좋아져 이번 시화도 탄생한 것이라고.

결국, 장금자 어르신의 작품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문해의 날'을 맞아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주최한 전국 성인 문해 교육 시화전 작품 공모전에서 최우수로 선정돼 교육부 장관상까지 받았다. 전국에서 출품된 작품 수만 3800여편이니 정말 대단한 성과다. 장 어르신은 한글을 더 익혀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자서전을 내는 꿈을 키우고 있다. 한글을 배우기 전의 삶이 흑백 티비였다면, 한글을 배우고 난 뒤의 삶은 컬라티비다. 코로나로 인해 남들이 다 힘들다고 하는 2020년. 장금자 어르신의 삶은 날개를 달았다. 한글을 익히며 다시 주어진 삶에 앞으로도 독수리 오자매와 함께 비상하시길 바란다.

“가정 형편으로 못 배운 한이 있어 이번이 아니면 영영 한글을 못 익힐 것 같아 절박함으로 공부했다. 모르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니까 다른 분들도 용기를 내서 도전하길 바란다”